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문단 편집) ==== 여성 단원 증가 추세 ==== 푸르트벵글러 재임 시절 까지만 해도 단원 구성은 독일인 혹은 인근 국가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거기에 성별까지 죄다 남성이었다. 이 때문에 종종 라이벌로 여겨지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남자의 자존심' 을 상징하는 악단으로 간주되었는데, 1980년대 자비네 마이어 사태도 이러한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악단의 체질을 드러낸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 출신 일색이었던 단원들의 국적은 카라얀 재임기의 오랜 시간을 거치며 국제적으로 면모했는데, 여기에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1963~64년에 새로운 호른 수석 주자를 뽑을 때, 카라얀이 가장 높이 평가했던 연주자가 스웨덴 출신이었는데, 호른 단원들이 독일적인 어두운 사운드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대하여 채용되지 못했던 경우가 있었다. 1969년 플룻 수석을 뽑을 때도 카라얀이 추천했던 제임스 골웨이에 대해 목관 단원들의 거부감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전설적인~~ 콘서트 마스터 미셸 슈발베[* 스위스 출신]를 뽑을 때도 단원들의 반발이 있어서 카라얀이 이를 무마하기 위한 발언을 해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카라얀 후기에는 실력이 뛰어나다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입단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플루트]]의 제임스 골웨이(영국), [[비올라]]의 쓰치야 구니오([[일본]]), [[바이올린]]의 야스나가 도루(일본) 등이 들어가 점차 국제적인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특히 야스나가는 이후 악단의 얼굴인 악장(콘서트마스터)으로 선임되었는데, 그는 베를린 필의 국제적인 특징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여성 단원과 관련해서는 자비네 마이어 사건 직후 [[페미니즘]]의 상승세와 여성 음악인들의 급증 등으로 베를린 필도 더 이상 '여성 불가' 의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있고, 카라얀 재임 후반기인 1982년에 [[스위스]] 출신의 마들렌 카루초가 제1바이올린 정단원으로 뽑힌 이래 지금까지 다수의 여성 연주가들이 정식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 2월 라트비아 태생의 비네타 사레이카-뵐크너(Vineta Sareika-Völkner)를 베를린 필하모닉 역사상 첫 악장에 임명하면서, 빈 필하모닉이 2011년 알베나 다나일로바를 역사상 첫 여성 악장으로 선임한 지 12년이 지나 베를린 필하모닉도 금녀의 벽을 확실히 허물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